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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Japan:Takamatsu

그녀와 나의 여행궁합, 다카마츠 밤산책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나왔다.


호텔 앞에 시내쪽으로 길게 뻗은 아케이드가 눈에 들어와 

일단 좀 걸으며 적당한 식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효고마치 향해 뻗어있던 그 아케이드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가끔 자전거 탄 일본 사람들만 

우리를 힐끔거리고 지나갔다.


희미한 캐롤이 천장 스피커에선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아주 작게, 그것도 전체 통로와 벽 사방으로 흩어져

정확히 어디서 나오는건지도 모르겠는 그 음악소리가

조용하다 못해 스산했고 



일요일이라고는 하지만

저녁 7시를 갓 넘은 시간일 뿐인데

이미 반은 닫혀있고, 그나마 하나둘씩 문을 닫는 나머지 상점들은 


어쩜 한군데도 가게 안에 그 흔한 음악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호객행위 하나 하지 않았다.


그건 참으로 이상한 분위기었다. 

유령도시처럼. 




시내로 뻗은 두 아케이드 중 나머지 한 아케이드로 건너가고 나니 

같은 캐롤 음악이 비로소 어색하지 않은 공기를 입고 배경에 깔렸다.

 

울리던 음악은 분명 같은 방송국에서 동시에 틀어주는 거였을텐데.

거참 홀린듯 신기. 





밥먹는 게 늦어지니 언니의 신경이 약간 날카로워짐을 느꼈다. 

내가 식당을 고른답시고 너무 여럿 퇴짜를 놓았나. 


새 여행메이트와의 원만한 시작은 

이 사람이 어디에 예민한가를 얼마나 빨리 캐치하느냐에 달려있다. 

암.




고민끝에 찾아들어간 곳은 

관광객이라는 맞아본 적 없었을 것 같은 순수 청년 서빙남이 기다리던 

한 일본식 밥집 겸 술집. 






그림도 영어도 없는 메뉴판도 괜찮았고

메뉴 정하면 부르겠다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계속 우리곁을 떠나지 않던 서빙남도 뭐, 잠시 당황했지만 괜찮았고 

필요한 거 있으면 흔들라던 빨간 깃발도 신선하니 좋았지만,


양이 너무 적었!!!! ㅜ_ㅜ





요것이 우리가 시킨 안주들

국그릇에 겨우 조만큼 나온, 흡사 닭똥집의 식감을 주던 안주. 


그리고 앞에 있는 밥은 실패하지 않는 보험용 '치킨 볶음밥'이었는데  

치킨이 밥알만한 싸이즈로 조각나 있었다. ㅋㅋㅋ



결국 배가고파 세번째 안주를 또 시켰는데, 

소주잔에 간장을 내어와 또 당황. 


하지만 분위기만은 정말 맘에 들었던, 현지느낌 물씬 나던 첫 식사 ! 






*

사실

밥먹으러 수상(?)한 곳에 들어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나에게 

뭔 일 있겠냐며 

아님 나오지 하고 과감히 팔을 끌고 들어갈 때, 


주문할 땐 깃발을 흔들라니까 해맑게도 

깃발을 전체 끝자락까지 쫙 펴서 힘차게도 흔들던 때 


외국어 절대 모른다는 티 팍팍내는 종업원에게도

계속해서 시키고 물어보고 웃고 교감하며 

결국 영어로 번역한 귀여운 종이까지 들고 오게 만든 때


이 언니의 내공을 느꼈다.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발견은 뭐든, 

시작해보는 데서 비롯하는 걸.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꽤나 성공. 


종업원이 적극 추천하는데

흔한 후라이드 치킨인줄 알고 그렇게나 여러번 거절했던 骨附鳥가 

단순한 치킨이 아닌 

이곳의 소울 푸드였다는 반전만 빼면.



밥을 먹고 나와 시내를 슬슬 둘러보기로 했다. 



정체불명의 우주선들이 떠다니는 건물도 보고



사람 없는 길거리에 어둠속에 누구라도 튀어나올까 움찔거리며 걸었지만 

밤산책을 포기할 순 없음.



▲ 처음 도착한 날 지리를 파악하느라 손에 쥐고 놓지 않던 지도는

▼ 곧 이렇게 실사를 재는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생각해보니 시작부터 이렇게 업된 이유..


혜진언니의 거침없는 행동이

나의 봉인 역시 풀게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은 난, 원래 그런거 안 챙피해하는 성격인데 

그렇게 호들갑 떨며 다니는 게 남에게 피해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의 여행메이트도 만났었고

그리고 그렇게 아닌 사람을 만나면 그냥 조용히 좀 자제하는것 뿐. 

실체는 원래 이러했는데 ㅋㅋ


그래서 비슷한 이를 만나니 이렇게나 금방 시너지가 났다는 거?



해변에까지 도착하여 

너무 어둡고 인적이 드물어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바닷가에 내려가보기로~



엄청나게 고요하다 

개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의 신발끄는 소리

개의 숨소리도 들린다.


밤하늘에서 오리온 자리를 찾았고 

초승달이 밝고 예쁘게 빛났다.

 

바다 근처는 10시정도밖에 안되었음에도 불구,

칠흑같은 어두움이 가득차 있었다. 

달이 아니었다면 바다의 물결조차 보이지 않을만큼 


잔잔한 파고는 바람이 없어 그런지 마치 호수처럼 얌전했는데

신기한 건 먼 바깥에 띠를 두르듯 불빛이 간간히 있다는거

어두운 바다위에 빙 두른 반짝거리는 불빛을 바라보며 고요함에 젖어들었다.





그러다 

문득 들고온 아이패드가 생각나 꺼내서 음악을 틀었다.


오늘의 브금은 브콜의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않는'

제임스블런트의 '캐리유홈'


찐 표현대로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공기를 통해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란 

놓칠 수 없는 희열이다.




이토록 고요함을 느끼는 여행지는 많지 않다 

그 순간이 허락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어느 도시보다 조용하고, 사람도 적고 

거리는 7시부터 어둑어둑 문을 닫지만 

한편으로는 이곳이 그 매력을 위해 

이렇게 조용한가 싶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시간이 되어 나는 비로소 해방감을 맛보았으며 

완벽한 여행기분에 젖어들었다. 

혜진언니는 벌써 저만치 갔고 

그녀도 나도, 서로의 자유를 

그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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