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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Philippine

수중 패닉

 

 

# 수중 패닉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물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나는

다이빙이 무서울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어째 전혀 하지 않았었다.

 

 

오전 다이빙을 끝내고

두번째 다이빙을 위해 배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들 늘어져 핸드폰을 보거나 바다를 감상하거나 쉬고 있었고, 난 햇빛이 따가워 목이 말랐다.

배에 마땅히 마실게 없어 두리번거리는데 두번째 다이빙 준비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고 마스크를 쓰고

승희가 먼저 입수, 그리고 이어 내가 입수했다.

 

 

입수하면서 바닷물을 조금 먹었는데

랜덤으로 골라주는 BCD(부력조절장비조끼)에 딸린 호흡기가

나에게 편한 사이즈가 아닌것 같았다.

쓰던 장비보다 마우스피스가 좀 작아서 다문 입에 힘을 주지 않으면 호흡기가 곧 빠질 것 같았다.

 

내가 호흡기에 신경쓰는 사이

마지막 나까지 입수한걸 확인한 강사님이 바로 하강 수신호를 보냈다.

 

얼떨결에 내려가며 어느새 바닥에 닿았다.

다 같이 세워놓고 강사가 승희에게 핀피봇을 시키느라 기다리는 사이 한 1분쯤 지났을까.

나는 갑자기 목이 너무 말랐다.

입안이 바싹 말라있었다.

 

 

 

숨을 들이쉬면 분명 산소통에서 산소는 들어오는데

마른 침을 삼키는 입안은 찢어질것처럼 뻑뻑했다.

힘준 입에 덜덜거리며 달려있는 호흡기가 언제라도 곧 빠질것만 같았고

그러면 나는 수심 20미터 안에서 숨한번 못 쉬고 꼼짝없이 죽는 거라는 생각이

갑자기 밀려왔다.

 

 

 

핀피봇을 끝내고 이제 출발하려는 강사님을 잡아서 수신호를 보냈다

 

"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여 까닥거리며: 어딘가 이상하다는 수신호)  이상이 있어요 "

" ? "

 

다시한번

" (목을 가리켰다가 다시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며 까닥거리며)  목에 이상이 있어요 "

" ? "

 

목이 마르다는 수신호 따위 배웠을리가 없었다.

아니 그런게 있기나 할리가 없다.

 

 

강사님이 수신호로 말했다.

" (귀를 가리켰다가 손바닥을 아래로 까딱하며) 귀가 이상해요? "  <-이퀄라이징이 안되냐는 질문

" (목을 가리키며 손바닥을 아래로 까딱하 ) 목이. "

" ......????? "

 

 

수신호로 소통해야하는 답답함을 이런데서 이렇게 느낄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급해진 나는 강사님의 손을 잡아 손바닥에다 글씨를 썼다.

 

ㄱ ㅏㄹ ㅈㅡ ㅇ

 

 

그러자 강사님이 내 손바닥에 글씨를 썼다.

 

ㅊ ㅣ ㅁ

 

 

침을 삼키라는 말이었다. 그리고는 호흡기를 빼서 바닷물을 조금 먹어보라고 했다. 짠물이라 도움이 되니.

나는 시키는 대로 따라했지만 한번 든 공포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수신호를 보냈다.

 

"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상승) 올라가고 싶어요"

" (엑스자를 만들며) 안되요. "

 

나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강사님은 나를 똑바로 보며 일단 진정하라는 제스추어를 해보였다.

난 울상이 되어 강사님 손바닥에 계속 갈증이라고 적었다.

 

강사님은 내 손바닥을 힘주어 잡더니 이렇게 썼다.

 


ㅊㅏㅁㅇㅡㅅ ㅔ ㅇ ㅛ

 

 

 

 

수면마취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원래 인공으로 산소통에 압축해서 넣는 산소는 대기중의 산소와 구성이 약간 달라서

숨을 오래 쉬면 목이 마르다고 한다.

 

갈증으로 호흡이 쉬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한번 들자,

갑자기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감이 엄습해서 완전 패닉에 빠졌다.

밀려드는 무서움에 머리속이 새하얘져서

평소 같으면 걱정했을 민폐상황에도 아랑곳없이 무조건 올라가겠다고만 우겼다.

 

당황하면 될일도 안된다는 일,

패닉에 빠진 다이버가 수면으로 솟구쳐 감압병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일이 바로 내 말이었다.

조금 더 당황했다면,나도 아마 있는 장비를 벗어버리고서라도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으로 돌진했을 것이다.

 

결국 그 다이빙 무사히 마치긴 했지만

같이 있던 일행 모두에게 폐를 끼칠뻔한 민망한 사건이었다.

 

역시 뭐든 얕잡아 봐서는 안되었던 건데,

이렇게 하나의 트라우마와 겸손에피소드가 생겼다.

 

 

 

 

#슬로우의 미학 - 물속에서의 움직임


 

물속에서는 속도가 매우 느려서

들이마신 숨 때문에 상승하려면 숨을 들이쉬고 5초정도 후에 상승하고, 내쉬고 5초후에 비로소 내려간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초보자의 마음은 그와 같이 여유롭지 않아서

올라가려고 들숨 계속 쉬면서도 성질 급하게 장비까지 동원하여 공기를 넣다가

족히 오미터는 신나게 솟구치고

레니의 손길을 느끼며 앞으로 눌려지게 된다.

 

 

한편
나는 유달리 웨이트(가라앉기위해 허리에 차는 납덩이)를 많이 차고도 안 가라 앉는 이유에 대해서

복식호흡을 안하는, 즉 폐에 숨을 많이 두고도 얕게 숨을 쉬기 때문이란 것도 알았다.(폐 윗부분만 쓴다는말)

복식호흡 복식호흡 했지만 처음 인지한 놀라운 사실.

 

난 이렇게 복식호흡이 안되는 덕분에 물속에서 부력조절에 한층 어려움을 겪었다.

발성에도, 노래에도, 건강에도 심지어 스쿠버다이빙에까지 이럴줄은.

서러워서 복식호흡 하고 만다 내가. 힝

 

 


▲ 가라앉지도, 뜨지도 않는 중성부력상태. 하버링


 

물속에서는 천천히 쉬지않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건 물의 저항이 공기보다 심하여 반응이 느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모든 행동이 슬로우로 보여 더욱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다이빙 중에 예쁜 민달팽이를 발견한 강사님이 수중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승희랑 나는 옆에 서서 사진찍는 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물 속에서는 조류도 있고, 숨쉴때마다 몸의 부력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게 진정 너무나 어려웠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승희가 바닥을 굴러 뿌연 먼지를 일으켰다. 그 먼지가 점점 강사님에게로 접근, 그걸 피해 민달팽이를 옮겨가며 또 사진찍으려는 찰나 내가 그 위로 엎어져 오리발을 휘젓다 강사님 머리를 강타!

 

승희말에 따르면 강사님은 싱크로 나이즈를 하셨다고.

그 장면이 또 다 슬로우로 길게 보였으니,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얼마나 웃겼을까.

 

▲ 문제의 그 민달팽이

 

#새로운 취미로서의 다이빙

 

 

단순 체험용으로 잠깐 다이빙을 경험하는게 아니라 자격증을 따기로 한 건 정말 괜찮은 결정이었다.

오픈워터 자격증 Open Water 이 있으면, 펀 다이빙을 할 수 있다.

 

항상 인솔자와 동행하면서 10m전후 수심과, 얼마되지 않는 반경의 포인트만 걷다 오는 체험다이빙.

반면 펀다이빙은 짝수 인원만 되면 보트 빌려서 언제든 출발가능하며 다이빙 포인트 고르는 것도 가능하다.

체험다이비의 반값도 안되는 가격으로 세부에선 한번에 30불정도면 얼마든지 다이빙을 할 수 있다고.

 

 

크루즈 여행처럼 스쿠버다이버들끼리 몇주씩 배를 타고 다니면서 

세계 각지의 다이빙 스팟에서 즐기는 다이빙 여행이 있다고 한다.

 

다이빙사이에 휴식이 필요한 특성상 자동으로

먹고-자고-다이빙, 먹고-자고-다이빙 이라는 환상적인 선순환사이클을 자랑하는 

놀라운 신세계를 또 하나 알게됐다.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넣어볼까. 완전 탐나네.

 

 

물에 두려움만 없다면, 이거 꽤 재밌는 고급 취미일듯하다. 

물에서 호흡과 부력이 다 잘 되기 시작하면 장비야 빌려서 얼마든지 즐길수 있고.

남들과 똑같이 바닷가에 놀러가더라도, 나는 여가생활의 옵션이 하나 더 생기는 거니

이 세계를 모르던 시절보다, 파이가 커진 느낌이랄까.

전세계 땅에도 볼게 이렇게나 많은데, 바다에는 얼마나 더 많겠냐응

 

다만 내가 생물(수중생물포함)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건 살짝 염려.

다른 해양스포츠도 적극 도전해봐야겠다.

 

 

다이빙을 거의 다 마칠무렵에 그동안 이지적 시니컬 완숙미를 뽐내던 강사님이 나랑 동갑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었다. (개구리 의상 때문만은 아님)

 

먼 타국에 버젓한 공간을 차려 본인의 즐거운 취미를 누림과 동시에

휴양온 사람들과 기쁘게 어울리고 가르쳐주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역시 중국과 미국에서 즐거이 지내던 한때가 생각났다.

 

세부에서 다이빙 강사를 꿈꾸는 다이브 샵의 몇몇 친구들도

소년스러움들이 아름다울 지경이었다.

덕분에 해외에 살고픈 병이 또 도졌다.

 

다이빙 내용을 기록하는 로그북/ 권한이 있는 강사의 인증도장이 찍힌다.

 

 

다이브샵에 올라온 우리둘의 기념사진들

 

 

 

▼숨소리만 들리는 수중의 느낌을 동영상으로 조금. 승희의 핀피봇. 나는 수중패닉에 빠지기 직전이다.

 

ps.

 

무겁고 거친 남자의 스포츠.

스쿠버다이빙을 하실 남자분들에게 한마디.

 

필히 머리가 짧아야 함.

 

찰랑한 머리는 다이빙을 하고 나올 때마다 미역줄기처럼 달라붙기만 할 뿐이므로.

곱슬이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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