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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Philippine

오래 기다린 세부와의 첫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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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르고 고른 비행기는 진에어. 난 처음 타보는 저가항공이다.

처음 생겼을 때, '짙은'을 광고모델로 썼던, 나에겐 친숙한 이력의 항공사이다.

 

티켓팅 때 연두색 모자를 쓴 분들을 보고 살짝 놀랐는데

비행기 안에 탄 스튜어디스들도 모두 연두색 모자에 폴로 티셔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신발마저 운동화.

편안한 차림만큼 편안한 미소로 승객을 맞는다.

 

그들중에는 남승무원도 적당히 섞여있었는데

불편한 정장으로 차려입은 여승무원들이 낑낑대며 캐리어를 나르는 것보다 보기에 한결 편했다.

결국은 (승객 눈에 비치기엔) 기내식 및 음료를 대접하는게 대부분인 역할도

남녀가 나누어 하는 걸 보니 훨씬 나았다.

분야를 막론하고 극단적인 성비구성은 난 왠지 모르게 불편해서.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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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비싼 국적기를 타지 않은 탓에, 오랜만에 국적기를 타서 그런가

승무원들의 고객응대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직업병처럼 타직종의 CS도 민감한 5년차 직장인의 눈어느 한구석 짧은 표정도 흠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객 응대가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기본적으로 배어있었다. 

 

불편하게 몇시간씩 자리에만 앉아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

잘하면 본전, 툭하면 컴플레인에 '죄송하다'라는 말을 달고 사는 철저한 서비스업.

그 마인드는 업종에 따라 생기는지. 뿌리깊은 곳부터 CS교육이 철저한건지. 궁금하다. 왜 은행은 안되는 거지 

나를 비롯한 내 옆 대리님, 내 앞 과장님, 수많은 내 동기들의 억지손님을 향한 분노!!

그 답을 좀 다오 너희들의 동력은 뭘까? 응?

 

▲ 나비를 형상화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진에어 기내식 팩. 기내간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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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까지 하도 난리를 쳤더니

가는 당일날 전국에 휘몰아친 폭설정도는 애교로.

비행기 네시간정도만 지연되는 걸로 - 

 

사실 출발전부터 지연을 예감은 했다.

밤 비행기인데, 폭설에 하루종일 밀렸을 비행기들이 전부 떠야 할 테니까.

진어에는 저가항공이라 배정순위도 밀릴테니..

 

이럴줄 알았으면 책을 수하물에 넣는게 아니었는데 ..

예감은 했는데 준비는 못하는 정도의 치밀함.

 

 

비행기가 너무 건조해서 눈이 건조하다 못해 불난듯 화끈거린다.

눈을 감아보지만 비행기가 뜨긴 뜰까 걱정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이러단 내일 아침에 도착할 지경. ㅜㅜ

 

 

 

게이트 앞에서도, 비행기에 타서도 몇시간 대기만 하다가

마침내 쿠쿠쿵 소리를 내며 이륙 발진을 하는 순간 속이 다 시원했다. 
자다가도 갑자기 깨어 설레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나와 같은 심정의 탑승객들을 몇몇 보았다.

조금 오래 달린다 싶은 순간 땅을 딛고 나가는 그 묵직한 느낌에 내 몸도 같이 아래로 퉁겼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옆으로 아래로 사라지는 불빛을 보면서 며칠간 시달렸던 스트레스가 조금 생각났는데
원래 이런거 바로 잊는 성격임에도 여태 생각나는 걸 보니 아직 떨치지 못한게 분명하다. 
비행기가 이륙까지 한 지금까지 여전히 퇴근하지 못한 기분이 드는 건 
마지막에 시원스럽게 인사하지 못하고, 불편한 마음을 매조지짓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왔기 때문일거다. 

어쨌든 여행을 선택하고 떠나는 것,  나중에 와서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라도

세부에서 제대로 쉬고 돌아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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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펜좀 있으세요? "
나는 아랑곳 않고 쉴새없이 떠들던 옆에 커플이, 자다 일어나 정신없는 나에게 불쑥 물었다.

주섬주섬 펜을 찾아 건네고 나니 2년 전 유가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 저기, 펜 좀..  "

유가도 그렇게 만났지. 진양과 중국에서 비행기 타고 오다가. 그가 그렇게 말을 건네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들처럼 비행기 안에서 연애를 하려면 펜없이 비행기를 타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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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으로 새벽 5시가 넘어갈때쯤 세부 공항에 착륙했다.

기나긴 입국심사를 거치고 픽업맨을 만난 시간은 거의 6시. 동이 터오고 있었다.

 

픽업차에 타고 게스트 하우스를 가는 길

흔히 타는 매끈한 승차감이 아니라, 달달거리는 딱 르망정도 승차감 (아마 포장이 잘 되지 않은 길 때문일 듯. 르망 미안)

테이프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시크릿가든 OST (적절한 유행의 간격)

다이브샵에서 마중나온 건장한 두 남자.

붉으스름 떠오르는 태양, 습한 공기, 낮은 나무가 있었다.

 

 

이국 같아. 그 어느 유럽보다 훨씬 더 이국 같아서 신나는 아침의 드라이브.

낮게 펼쳐진 나무 뒤 검푸른 하늘을 헤치고 점점 붉어오는 새벽의 분위기가 홀릴 듯 빠져든다. 

 

 

 

며칠간 펼쳐질 시간들이

이제야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진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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