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avel/Turkey

쓸쓸함보다는 화려함, 에베소 (에페스)



 
#
에페스는 B.C 2000년 부터 그리스,페르시아,헬레니즘,로마,그리스도교 문화 가 거쳐간

백과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중요한 건축물이 수없이 많이 세워진' 곳이다.

성경 신약 '에베소서'의 무대가 되는 곳 (Ephesos)이자, 그리스 시대에는 최고 신전이 놓여졌던, 

역사적으로 미친존재감 발휘하는 곳.




#
에페스 근처에 '셀축'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현재의 지리적 교통은 셀축을 중심으로 하고 에페스는 셀축에서 버스를 타고 15분쯤 올라가면 들어갈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매표소까지 양쪽으로 쭉 늘어선 상점들이 눈에 띈다. 카파도키아, 파묵칼레는 워낙 도시 자체에 유적이 구별없이 섞여 있어서 그런 느낌이 적었는데,  여긴 확연히 '관광명소'의 느낌이 난다. 이 작은 도시 셀축에, 에페스를 보기 위한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스쳐갔을까. 언뜻 보기에도 여행객과 현지인이 반반 정도로 딱 구분이 된다.

 

여행객이 많아 도시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거나 반쯤 흥분되어 있을만도 한데, 셀축은 차분하다.






#
에페스로 올라가는 작은 버스에 중국인 관광객 한무리가 앉았는데, 내 옆에 귀엽게 생긴 여자애 하나가 앉았다. 
꼭 이럴때마다 말 한마디 붙여보고 싶은 이 욕구는 어쩔라요. 
외국에서는 그래도 도전적 마음으로 임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도 없으니, 용기를 내어 통성명을 한다. 
아이폰 중국어 병음 자판으로 내 이름을 찍어 보여줬다. 이렇게 편한세상!
하지만 알아들은 건, 그 아이가 姜씨라는 것 뿐 ;ㅁ;


▲ 산이 집인지, 집이 산인지 - 자연과의 조화가 훌륭!


 

▼ 표를 끊고 들어가니 널찍한 길에 나무가 늘어선 게 꼭 산림욕을 하는 기분이다.

높은 푸른 나무들이 피톤치드를 쏘아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리고 곧 나무 뒤로 드러난 원형극장의 위용.










부서진 돌들 뿐이지만 질서있게 늘어선 돌과 나무가 위풍당당하다.

푸르른 배경에 흰회색으로 뻗은 길과 기둥의 배색도 아름답다.








#

에페스는 벌떼같은 관광객이 드글드글했다.

하지만 25리라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진 장관.

어느 책자의 표현대로 옛적의 쓸쓸함보다 화려함이 남아있는 공간이었다.


 

세상에 많은 유적들이 돌덩이와 터만 남아 과거의 부귀영화를 자랑하지만, 

역사적 의미를 공감하지 못하는 관광객에게 돌덩이는 그냥 돌덩이일 뿐이다. 


하지만 에페스는 다르다. 

돌덩이만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 부서진 돌덩이 사이에 드러난 고고한 각도. 

매끈한 분홍빛 속살이 투명하게 비춰지는 돌의 무늬.



그리고 그 정점은 바로,  셀수스 도서관!





이 도서관을 보기 위해 왕복 며칠을 할애한다 해도.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로마의 판테옹과 콜로세움만큼, 멜번의 주립도서관만큼 애정이 듬뿍 생겨버린 멋진 녀석.

남아있는 것은 앞판뿐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만큼, 

네모였을 건축물의 뒷벽, 옆벽 두개는 사라지고 정문 포함한 앞벽만 남아있다.

그 앞벽만의 포쓰도 이리 멋진데, 전체가 다 있었으면 얼마나 굉장했을지.



 


손이 닿을만큼 가까이 다가가 그 대리석을 만져보니, 그 옛적의 우아함이 전해져온다. 

뭐라 감히 평하기도 어려울만큼 숭고하고 홀리한 감성도 전해져온다. 


건축물의 형상도, 조각도, 글씨도 너무너무 정교하고 고급스러운데, 

어떻게 밖에 세워진 건물외부가 이렇게도 정교할 수 있는건지 궁금하다. 

보통 건물의 내장은 정교하게 조각한다 해도, 

비바람과 태양빛을 맞는 외부 벽을 이렇게까지 조각하면 다 부스러지지 않나. 신기할 따름.






▲ 아래 조그맣게 남아있는 글씨가 진퉁, 위에 글씨는 복원.


한편 그 벽은 너무 무방비여서, 내가 다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터키의 작열하는 태양볕에 아무 방어도 없이 혼자 우뚝 서 있는 건물의 앞판은, 바깥쪽부터 돌들이 군데군데 파손되어 그나마 가운데만 온전히 남아있는데, 어느날 태풍이라도 지진이라도 나면, 흔들흔들하다가 그냥 와르르 무너져내릴 수 있을 것 같아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이곳은 주변에서도 손꼽히는 유적지(우리로 치면 경주쯤 될듯)여서, 온갖 국가의 수학여행 장소로 내정되어 있는 듯. 정말 많은 아이들이 계단이든 돌턱이든 빼곡히 모여앉아, 아이들 특유의 부산스러움과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만지고 때리고 부수고 뛰고 하고 있었는데. 이래도 되나....잠시 침묵...





도서관을 지나 크레티아 거리로 올랐다. 

이곳이 당시의 메인로드. 길 폭은 넓지 않지만, 고도가 높은 헤라클레스의 문 앞에 떡 서면 쭉 펼쳐진 내리막 끝에 셀수스 도서관의 정면이 멋지게 드러난 뷰가 장관이다. 



▲▼ 하드리아누스 신전



길 중간중간에는 반쯤식 파손된 신전들도 있고, 바실리카, 아고라도 있다.

지금 많이 부서진 터만도 이 정도인데, 당시의 호화로움이 애써 그리지 않아도 쉽게 상상이 된다. 

역사와 호흡한다는 느낌을, 난생처음 조금 현실적으로 느꼈다. 책이나 복원도 등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시대의 신전이 기둥이 눈 앞에 있는데야. 실감이 안 날래야 안 날수가 없다.




셀축에 내려와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에 들렀다. 

에페스에 있는 유적 중 옮길 수 있는 것은 여기 옮겨 진품을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 프쉬케와 에로스


▼해시계





▼ 특히 아르테미스 에페시아 상이 유명한데 로마시대에 그리스도교가 공식화 된 후 숨겨져 보관되어 온 그리스 시대의 성상이다. 근데, 모습은 초큼 무섭. 윽 





#

셀축에서 짧은 여정을 마무리하고 이즈미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즈미르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주름이 자글한 어떤 아저씨가 내 앞에 마주보고 앉았는데 

까맣게 탄 얼굴에 벌개진 눈동자며, 때가 낀 손톱, 먼지낀 청데님과 셔츠 사이로 보이는 흰색 가슴털이 

영락없는 농부의 차림새이다.

뒤이어 탄 어떤 이는 보라색 히잡을 이마까지 두르고 안에는 화장을 곱게 하고 땡볕에서 돌무쉬를 불러세웠다. 

그 더운 와중에 화장하나 히잡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그녀에게는 

터키 이즈미르의 이 작은 세계가 전부이겠지.


같은 지구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이렇게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다.

 



여기 터키서 확실히 깨달은 바 하나는

교통수단을 순순히 갈아타는 법이 없다는 것.

무려 공항이라는 뚜렷한 목적지를 지닌 우리를 쿨하게 길바닥에 떨구고 가버린 돌무쉬 기사님.

덕분에 캐리어 끌고 공항까지 셋이 나란히 찻길을 따라 한참 걸었다





# ps...
이즈미르 공항에서 이스탄불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배가 고파 피자집에 들렀다. 생맥주를 파는데, 용량이 500ml, 700ml 이렇게 두 종류다. 

한국에서 쉽게 못 만나는 거대용량에 잠시 고민하던 우리의 레이다에 포착된 한 외국인이 있었는데, 

우리의 시선을 의식한 그는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7을 만들고 (700ml라는 뜻) 이어 엄지를 추켜올렸다.


수긍한 아빠의 명령을 받아 맥주를 시켰다. 

에페스의 마무리, 운명같은 EFES맥주로.



  

아무리 하루종일 피곤했대지만 고작 700ml를 나눠먹고 취기가 올라 기분이 살짝 좋아진 우리 셋. 

와하하하 웃으며 떠들다가 엄마아빠가 나의 여행기를 거든다며 불러준 그날의 메모. 

이렇게 써 있다.

  

" 맥주는 아빠가 십분의 육, 엄마가 십분의 삼, 내가 십분의 일을 먹었다.

주문하고 돌아오자마자 맥주의 반이 사라졌다. 사진을 찍을 새가 없었다. 맥주가 맛있었다. 삼분만에 700ml를 하나 더 시키자고 했다. 얼마냐 해서 15리라라고 했더니 바로 포기했다. 취해서 비행기 타도 되냐고 물어봤다. 행패만 부리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오늘의 일기 끝 "





728x90

'Travel > Turke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셀축행 버스타임  (4) 2012.11.13
하늘색 호수의 땅,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4) 2012.11.08
파묵칼레 아침산책  (2) 2012.11.01
불청객  (6) 2012.10.27
풍선투어  (6) 2012.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