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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Turkey

라이더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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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내린 공항은 카파도키아의 케이세리 공항.

다행히 해외여행중 처음으로 해당 호텔에서 픽업서비스가 있다고 해서 장거리 비행후에도 기꺼운 마음으로 공항문을 나섰다. 뜨거운 태양 아래 붉게 익은 얼굴을 한 건장한 청년 하나가 A4용지를 들고 서 있었다. [ Mr. Yoon ]

 

그렇게 큰 호텔도 아닐텐데 이렇게 일일히 서비스를 하다니 감동이 무르익을 쯤, 그 청년은 다른 이의 이름도 불러 작은 버스에 꾸역꾸역 몇명을 더 태웠다. 아마도 이 차는 호텔 픽업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차 같다. 자리를 잡고 밖을 구경하는 사이 어느새 차는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다. 가도가도 끝도 없는 고속도로. 펼쳐지는 풍경은 굉장히 메마른 들판 같은 느낌이다. 우리를 태운 청년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캔콜라를 하나 두고 홀짝이며 끝도없는 고속도로를 잘도 달렸다. 속도를 내며. 덜컹거리며.

 

 

 

 

한 시간쯤이나 달렸나. 상점도 드문드문 보이고 기념품 가게도 보이는 거 보니 시내로 들어선 것 같다. 우뚝 솟은 뾰족한 바위들. 여기 뭔가 척봐도 분명 물건이다. 써 있는 표지판을 보니 Goreme :괴레메, 사전조사에 의하면 이곳이 카파도키아 관광의 중심지다. 유명하다지만 소박한 길의 첫인상이 나쁘지 않다. 좁은 언덕길로 들어서니 자그마한 규모의 동굴호텔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버스는 그 틈을 비집고 다니며 손님들을 하나씩 내려주기 시작했다.

 


 


 

 

 

 

 

 

작지만 아담한 호텔이 너무 예뻐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어여쁜 호텔 중 우리 숙소는 어떨지 어딜까 잔뜩 기대하며 기다리는데 버스는 마지막 손님을 내려준 뒤 문을 탕 닫고 어디론가 큰길로 들어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어. 어디가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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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분 후 

우린 완전히 망연자실하여 Antik 호텔 앞에 서 있었다.

여긴 괴레메에서 차로 10키로 쯤 떨어진 Urgup: 윌귑이란 동네인데 그중에서도 우리 호텔은 산기슭을 다 기어올라가 무너져 내린 벽 앞에 붙은 아주 수상한 곳이었다. 주변엔 아까와 같은 상점이나 매점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다 조용한 집들인데다 차도에서도 한참을 올라온 터라 버스는 어디 있는지 택시라도 어디 있는지 알수가 없다. 어떤 방법으로 이동해야 할지도 아주 난감한 상황.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를 내려준 청년은 호텔이름만 확인하고 짐을 내려주고는 쌩하니 가버렸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아침인데도 호텔에는 주인이 없었다. 호텔 오피스를 계속 두드리다가 이층으로 올라가니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같은 분이 얼결에 불려나왔는데, 영어도 안통해 손짓발짓으로 간신히 전화로 통화가 된 주인은 지금 호텔로 가고 있으니 30분만 기다려 달라는 말만.

 

종업원이 열어준 호텔 삼인실은 어둡고 눅눅하고 퀘퀘한 반지하이다. 내가 아무리 이상한 호텔도 몇번 가봤지만 이건 진짜 너무했다. 부모님도 함께였는데. 게다가 우리는 이박삼일이나 여기서 지내야 하는데 ! 주인을 기다리며 울화통이 터져 여행사에 로밍으로 전화를 걸어 따졌지만 어차피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방에서 지내는 수밖에. 

 

 

 

 

이때의 절망감(짜증의 수준을 넘어섬-_-) 은 정말 다시 돌리고 싶지 않다. 아무리 카파도키아가 동굴호텔 체험이 특별하다 해도 이건 심했다. 이때의 분노 게이지 그대로 여행사에 풀었어야 했는데 역시 돌아오니 귀찮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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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는 꽤 큰 도시이고 관광명소도 꽤 널찍하게 여기저기 떨어져있다. 유네스코에 등재될 큼 신이 내린 풍경을 가지고 있지만, 건조하고 메말라 사람 살기에 크게 좋은 환경은 아니라서 인구는 많지 않다. 당연히 주된 수익은 관광수입. 관광은 넓은 지역을 커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Day Tour 형식으로 많이 발달했고, 그 Day Tour는 또 각각의 버스회사를 끼고 있다. 투어 시작 시간이 되면 버스가 각 호텔까지 픽업하러 와서 손님들을 찾아서 태우고 투어 회사로 데려다 준다.

 

괴레메 정도는 걸어서 돌아볼 수 있지만 나머지 관광지는 투어를 이용해야 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투어는 이미 늦었고, 첫날은 괴레메를 나머지는 투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호텔 주인은 우리에게 계속 안심을 시켰지만, 초장부터 뒤통수를 맞은 우리는 기분이 유쾌할리가 없었다. 일단 주인이 알려준 대로 윌귑 시내로 조금 걸어내려가 2시간마다 하나씩 온다는 버스를 기다렸다. 10분 정도 후에 도착시간이었는데, 생김새를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투어 버스 때문에 이 버스 저버스를 다 세우며 난리부르스를 떤 끝에 결국은 20분 후 괴레메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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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파도키아 뿐 아니라 터키는 나라의 크기에 비하여 철도가 많이 발달하지 않아, 차가 주된 교통수단이라 한다. 도시간 이동도 주로 야간버스 체계이고, 긴 간선버스 노선은 조그만 버스들이 옮겨준다. 개중에는 마을버스(돌무쉬)도 있고, 개인들이 운영하는 버스도 있고. 예를 들면 우리 호텔은 픽업서비스를 그 청년버스에 시킨 셈이고, 투어회사들도 각각 버스를 시켜 쓰는 셈이다. 수많은 라이더들과 수많은 차들이 쓰임새와 시간에 맞게 대기중이다.

 

 

의외로 택시는 많이 보이지 않아서, 타고 싶어도 탈 수가 없었다. 되도록 현지 교통수단을 이용하자는 주의인 내 주장(뿐 아니라 나와 똑같은 생각의 아빠) 덕에 집에 돌아오는 날까지 택시는 단 한번을 타지 않은 진귀한 여행이 되었다.

 

택시 정도만 안타고 말았냐면 말도 아니다.

그날 괴레메에서 돌아오던 우리는 내린 장소에서 다시 윌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 버스 생김새를 구분하기 힘들어 이차 저차 기웃거리며 '윌귑'을 외치다가, 타라는 신호를 받고 올라탄 버스가 뭔가 이상했다. 고만고만한 애들이 다 자기들끼리 앉아 숙덕거리며 웃고 있고, 요금도 받지 않는다. 뒤에 빈 자리에 와서 앉아서 앞뒤 사람한테 물어보니, 버스가 아니라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로 놀러온 대학생 엠티버스였다.

 

이것은 다름아닌 히치하이킹!?

 

누군지 어디서 왔냐는 물음에 아빠가 my wife and daughter 라고 소개했고, 뒤에 나란히 앉은 수줍은 여자아이들은 우리를 보며 계속 웃고 속닥였다. 음악이 나오고 버스 전체가 들썩이며 움직이던 느낌. 내릴 때 아빠의 호탕한 에브리바디 땡큐, 엄마의 안녕하던 인사말,우리 모습에 신기해하며 눈을 반짝이며 건넨 수줍은 손인사

 

버스값 7.5리라가 아니라 75 리라를 주고도 못 바꿀 진귀한 경험.

 

이정도면 폭풍 라이더의 나라에서 라이딩 적절히 이용하기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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